마로초가 쏘아 올린 작은 공…글쓰기로 극복한 코로나19
마로초가 쏘아 올린 작은 공…글쓰기로 극복한 코로나19
  • 광양시대뉴스
  • 승인 2021.04.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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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글’ 수수께끼 동시집 펴내
코로나19 상황 속 만들어 낸 기적
“글쓰기는 아이를 지키는 평생의 힘”
코로나19를 이겨낸 ‘다·줄·께’ 저자들마로초등학교 3학년3반 어린이들이 김영숙 담임선생님과 함께 수수께끼 동시집 ‘다·줄·께’ 발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동심을 발휘해 손에 든 주제어를 해석했고, 마침내 한 줄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선보였다.
마로초등학교 3학년3반 어린이들이 김영숙 담임선생님과 함께 수수께끼 동시집 ‘다·줄·께’ 발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동심을 발휘해 손에 든 주제어를 해석했고, 마침내 한 줄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선보였다.

‘□□’

문제를 맞히기 쉽지 않았다. 당연히 이거겠지 싶었는데 틀렸다. 답을 보고 다시 보니 아이들의 힌트는 정확했다. 딱딱하게 굳어진 상상력이 아이들 덕에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는 특히 교육계를 강타했다. 비대면 수업 확대와 교육권 확보 사이, 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다.
마로초등학교 3학년 3반 24명의 학생과 김영숙 담임교사는 매서운 역경을 딛고, 작지만 깊은 울림을 퍼뜨렸다.
이들은 지난달 ‘날마다 한 줄 수수께끼 동시집’, 줄여서 ‘다·줄·께’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 시작은 단 한 줄의 글쓰기였다.
한 줄 글이 모여 시가 되고 책 한 권이 되는 기적 같은 이야기엔 두 개의 빈칸을 채울 실마리가 숨어있다.

#넌 변덕쟁이야 아무도 예측 못 해
다 같이 모여 수업을 듣기는커녕 짝꿍과도 떨어져 앉아야 하는 상황. 언제 다시 마주할지 모르는 친구들과 할 수 있는 일이란 단 한 줄의 글쓰기 뿐이었다.
등교가 가능한 때는 교실에서, 화상 수업에선 채팅으로 매일같이 한 줄의 글을 썼다. 주제를 정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5명이 쓴 5줄의 글을 이리저리 조합해 한 편의 시를 만들 수 있게 됐다.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엮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3학년 3반 24명의 학생과 김영숙 교사는 마침내 ‘수수께끼’라는 새로운 의미를 덧입혀 한 권의 책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김영숙 교사는 “글은 계속 써봐야 느는데 코로나19 여파로 2/3 밀집도 수업이나 화상 수업이 이어지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은 한 줄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것뿐이었다”며 “글을 어떻게 엮어 나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포기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종잇조각밖에 남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책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강물이 흐르고 흐르듯, 너도 흐르고 흘러
김영숙 교사는 코로나19라는 큰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교육방식을 이어나갔고, 학생들은 그 가르침 속에서 마음껏 놀았다.
작고 연약한 생명 안에서 약동하는 발랄함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은 우리 모두에게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이들은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뎠고, 창의적인 결과물로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했다.
김영숙 교사는 처음부터 ‘책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술회했다.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이 글쓰기를 주도했다. 아이들은 한 줄 쓰기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며 최종적 교정작업에도 참여했다.
책이 출간된 날 학생들은 축제를 벌였다. 책을 읽느라 수업이 어려웠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린다며, 몇 권씩 사겠다고 나섰다.
이 작업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협동해서 책을 만들어 냈다는데 큰 기쁨을 느꼈다”며 “잘하려고 할수록 어려웠지만 쉽게 생각하니 새로운 생각이 솟아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로초등학교 김영숙 교사
마로초등학교 김영숙 교사

#여러 가지 마음이 많이 있어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5명의 학생이 생각을 모아서 하나의 시를 짓고, 그것을 수수께끼 방식으로 구성하는 창조적 시도의 결과물이다.
김교사는 “처음에는 뛰어난 생각을 하는 주도적인 학생들의 글이 맨 위에 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두 자리를 양보한다든지 요일별로 선두를 바꿔 글을 싣는다든지 하는 협업·협동·민주적 절차를 스스로 만들어나갔다”며 “학생들에게 어른의 시간이 아닌 어린이의 시간을 인정하고 지켜주면 스스로 넓어지고 깊어지며 참다운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아이가 자신만의 걱정과 흥미, 삶에 대한 태도 등을 가지고 있지만 물어봐 주지 않으면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며 “이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자기 생각과 삶에 대한 깊이를 갖게 해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고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삶 속에 글쓰기가 항상 함께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선택하는 거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학생들 사이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줄 글쓰기의 또 다른 교육적 의미다.
정답을 맞히는, 공부 잘하는 학생뿐 아니라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번뜩이는 학생도 주목받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3학년만 돼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교우들의 부러움을 사지만, 교사가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지지해 주면 아이들은 교과서 밖에서도 성취를 얻을 방법을 찾는다”며 “실제로 3학년 3반 한 아이는 평소 자기표현도 안 하고 심지어 숙제도 안 했는데, 시 한 줄을 잘 쓰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이들의 인정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저 친구도 잘하는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많이 밝아지고 자기 의견도 말하는 모습을 보여줘 교육자로서 너무나도 감사한 순간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 교사는 이 외에도 평소에 해보지 않은 생각을 해보면서 다양하고 깊게 사고하고,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무언가를 남기는 꾸준함의 힘도 일깨웠다.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사람과 사물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삶과 큰 우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아
김영숙 교사는 학생들과 책을 판매해서 나온 인세를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학생들과의 회의에서 환경단체 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를 도와주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최종적으로 어린이들을 돕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처음 책을 기획할 때, ‘몇 권이 팔리던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던 막연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로 21년째 교편을 잡은 김영숙 교사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학생들에게 매일 그림책을 읽어주며 독서에 대한 흥미와 상상의 폭을 키우고 있다.
김 교사는 글쓰기와 시 쓰기를 교육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삼았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학급지와 사진집을 만드는 작업도 이어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교육철학의 일환이다.
김 교사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게 하는 타율적인 방식보다 먼저 책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읽어주고 이야기 나누며 흥미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쓰기와 책 발간 같은 결과물이 동료 후배 교사들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해 줬으면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김 교사는 교사 스스로가 언제 행복한지 생각해보고, 그걸 아이들과 같이할 수 있으면 해보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교사가 좋아하고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학생들과 나누고 꾸준히 모아나가면 뜻깊은 결과물을 만들게 된다는 철학이다.
김영숙 교사는 8살 때부터 써왔던 일기 일부가 아직도 남아있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스스로가 체험을 통해 글쓰기의 가치를 깨닫고 제자들에게도 귀중한 삶의 보물을 물려주고 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읽는 글은 대부분 어른이 쓴 것이라 아이들의 글을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며 “한 줄 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교사가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날마다 한 줄 수수께끼 동시집, ‘다·줄·께’
날마다 한 줄 수수께끼 동시집, ‘다·줄·께’

#한 번 뿐이니까 그냥 즐겁게 살아
김 교사는 올해 2학년 3반 학생들과도 매일같이 한 줄 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교실에는 ‘입’이라는 글씨와 그림 밑에 25명의 한 줄 글이 빼곡히 자리했다. 창의력 넘치는 글에는 노란색 미소 표시가 붙어있었다.

‘□□’의 정답은 ‘인생’이다.

한 아이는 #고릴라 같기도 하고 장난감 같기도 하고, 공사장 같기도 하다고 말했고 다른 아이는 #너는 하루살이야 한 번밖에 없으니까, #목숨만큼 소중한데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기자는 “한 번뿐이니까 그냥 즐겁게 살라”는 말이 특히 와 닿는다.
어린 날의 동심은 어느새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 꿈꾸고 이루었던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은 아이들의 곁을 평생 지킬 것이다.김영숙 교사와 학생들은 오늘도 교실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 자기 생각을 오롯이 담은 한 줄 글을 쓰고 있다. 아이들의 ‘인생’이 그렇게 영글어 가고 있다.                                

이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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