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그리는 김순애 어르신…72세에 얻은 취미
‘유화’ 그리는 김순애 어르신…72세에 얻은 취미
  • 광양시대뉴스
  • 승인 2019.08.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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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 당저마을 할머니들의 그림전시회
▲김순애 할머니의 그림

꽃 피고 나무되고 우리 집이 그려지던 날 참 많이 웃었소. 이름 석 자 쓰며 웃고 참 많이 떨리기도 했소. 점 하나 선 하나에도 잘 그린다선생님 칭찬에 코끼리 춤을 추며 그림을 완성했지. 너무 행복하고 고마운 시간이었소. 그림 그리던 날 수요일, 자꾸 생각나 그리워질 것 같소

 

김순애 할머니의 특별한 수요일

 

김순애 할머니가 그린 집은 두 종류다. 먼저 초가삼간 지붕에는 잘 익은 박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마루 앞엔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있다. 마당에는 닭 두 마리가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데 한 놈은 화려한 색의 꼬리 깃에 아랫볏도 달린 수탉, 한 녀석은 다소 몸집이 작은 암탉이다. 마당 뒤편에는 감나무 주위로 장독대와 작은 돌탑이 쌓여있다. 시대를 보여주듯 바닥은 시멘트가 아닌 흙으로 덮여져있고 하늘엔 노을이 졌다.

다른 그림에는 기와지붕 집이 그려져 있다. 집 앞에는 슬리퍼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마당에는 노란 꽃이 활짝 폈다. 커다란 다래나무에는 열매가 실하게 매달려 있는데, 익은 정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표현됐다. 나무 옆에는 초가삼간 그림보다 더 많은 장독대들이 보인다.

그림에 취미가 없었다던 말이 무색하게 김순애 할머니의 작품은 섬세하다. 김 할머니는 마을지도 그리기 마을공동체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그림 수업 첫 날, 손이 떨려 선도 제대로 긋지 못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도저히 선이 바르게 그려지지 않아 결국 작대기를 대고 그렸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마을 할머니들이 처음부터 그림그리기 수업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평생 해본 적 없는 그림그리기에 도전하기란 할머니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반면 김 할머니는 처음부터 너무 하고 싶어 못 하게 되면 어떡하지하며 애가 탔다고 한다.

파란만장하게 시작한 그림그리기는 결국 매주 수요일 세 시간 동안, 모두 웃으며 시작해 웃으면서 끝나는 일과가 됐다.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나는 잘 그렸네, 너는 못 그렸네하며 배를 잡고 웃었지. 나중엔 모두 그림 그리는 날을 기다렸어

어떤 날에는 선생님이 할머니들에게 꽃을 그려보라 했다. 김 할머니는 당황했다. 꽃을 좋아하건만 도저히 무슨 꽃을 그려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막 그렸다. 알록달록한 색을 골라 꽃잎을 칠하고 암술과 수술도 그렸다. 얼추 마음속의 꽃이 완성되자 선생님의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꽃의 이름을 적으라 하는 것 아닌가. 무슨 꽃인지 모르고 그린 꽃의 이름은 할머니도 몰랐다.

할머니는 그래서 결국 꽃 이름이 뭐였어요?’라는 질문에 그냥 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광양읍 문화예술회관 그림전시회 날, 김순애 할머니와 가족들

 

김순애 할머니를 사랑하는 이들

 

김 할머니는 7살 차이나는 남편과 21살에 결혼해 13녀의 자식을 낳았다. 16년 된 다래나무와 블루베리 나무, 수국, 해바라기, 나팔꽃이 있는 김 할머니의 집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찾아오는 자식들은 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갖가지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 흔적으로 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이 직접 만든 상장과 가족 앨범이 벽에 걸려있었다.

할머니는 벽에 걸어놓고 자주 들여다 본다며 앨범을 펼쳐보였다. 그 안에는 가족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담겨있다.

지난해 김 할머니의 생신 때였다. 자식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할머니에게 각티슈를 건넸다. 당장 휴지가 필요 없던 할머니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자식들은 할머니에게 계속 휴지를 뽑아보라고 권했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휴지를 한 장 뽑았다. 그러자 뽑힌 휴지에 지폐가 줄줄이 딸려 나오는게 아닌가.

이밖에도 김 할머니의 집에는 마술을 배운 아들이 가족들 앞에서 마술 공연을 하는 등 재미난 에피소드들로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자식들에 할머니는 고마워하면서도 자식들이 어렸을 적 넉넉하지 못했던 형편에 빚을 내서라도 자식들 공부를 더 시켜줄걸 그랬어하며 미안해했다.

 

▲16년 된 다래나무 아래 김순애 할머니

 

앞으로 또 어떤 걸 배워보고 싶으세요?’

 

김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서예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현재 봉강면의 문화시설을 톡톡히 누리며 요가와 노래교실도 다니는 할머니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김순애 할머니의 도전을 응원하며, 곧 다가오는 31일 생신도 축하드립니다.

 

최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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